여름 환상특급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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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3

 

- 띠리띠리 띠리리리

"택배 왔습니다"

선잠이 들었다가 서서히 깬다. 목이 뻐근하고 팔다리가 저린다. 창이 열려있다. 찬바람을 쐬어서 일지 아님 며칠동안 몸을 혹사해서 일지 잠을 잘못 잔 탓일지 몸살기운이 있다. 무거운 머리를 들고 몸을 일으켜 문으로 향했다.

"이강원씨 본인이신가요? 싸인 부탁드립니다."

채 대답을 하기전에 질문은 끝이 났다. 아니면 잠이 덜깨서 무의식적으로 끄덕이고 있었을수도 있었겠다. 크게 중요한것은 아니다. 이강원 본인이 맞으니까.

- ....?

누구지? 강원은 2~30초간 멍하니 있다가 잠이 서서히 깨면서 대호 어머님 성함이 연자 화자라는걸 기억해냈다. 눈을 비비며 눈꼽을 땠다. 택배 상자를 열기위해 부엌에서 과도를 꺼내왔다. 과도로 상자 두 문 사이의 홈에 끼워 누런 테잎을 반으로 잘랐다. 상자를 열고 보니 안에는 다시 포장된 상자가 있었다.

 

 

D-7

 

"김치볶음밥 하나"

산적같이 생긴 식당주인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강원을 떨떠름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이내 부엌으로 들어간다.

"어이 거기 진상손님. 영업은 9시까지라고 그뜻은 최소한 8 30분에 와서 주문을 해야한다는 소리야"

강원이 피식 웃는다. 시계는 9 1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티비는 한참 프로야구 롯데와 SK의 시즌 8차전이 방송되고 있었다. 스코어는 5:3 SK가 이기는 가운데 8회말 1사 만루 4번타자 이대호가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위협적인 싸이렌소리가 사직에 울려퍼졌다.

"대호 나오네 대호 너랑 이름 같은 놈."

퉁명스럽게 대호가 한마디한다.

"정대현 나오겠네."

SK의 투수교체 광고가 나왔다.

"정대현 나올 듯~"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더 고약해지더니 이내 기름에 김치 볶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대호는 지금쯤 주문을 외거나 응원팀의 4번타자를 욕하고 있거나 둘중에 하나일 꺼다.

"오푼이 쉑히 나왔냐?"

이대호의 대 정대현 통산 타율은 채 5푼이 안된다. 그래서 식당주인 대호가 정대현과 마주한 롯데 4번타자 이대호를 볼때마다 하는 표현은 오푼이이다.

"광고 중."

볶는 소리가 빨라진다. 말은 저리해도 간절히 응원팀의 4번타자가 천적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고싶은걸게다. 다시 경기는 시작 되었다. 거구의 4번타자는 첫 볼을 잘 골라낸뒤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변화구에 헛스윙을 한다. 그때 땀을 뻘뻘흘리며 대호가 김치볶음밥을 들고 나왔다.

"너무 급조한거 아냐?"

"닥쳐 짬뽕을 코로 먹이기 전에"

이내 대호는 경기에 집중한다. 유격수 땅볼 더블플레이. 둘의 얼굴 전부가 일그러진다. 대호는 머리에 쓴 두건을 구겨쥐며 낮게 읖조린다.

"아 벌꿀삼겹살 같은 쉑히"

 

이닝 사이의 광고가 나왔고 둘은 야구에 흥미를 잃었다. 부인은 뭐하고 여기에 밥먹으러 왔냐 장사는 잘되느냐 같은 얘기가 오고갔다. 어느덧 경기는 5:3 그대로 끝이 났다. 그리고 곧 두명의 남자가 잠긴 식당문을 두들겼다. 대호가 귀찮은 듯 고개를 든다. 양손에 맥주 Pet병을 든 두 사내가 문을 열어 달라고 계속 독촉한다.

"진상손님 둘 추가네"

웃으며 강원이 대호를 쳐다본다. 대호는 천천히 일어서 문을 열어주려 걸어 나갔다.

"꼴데 병신들 오늘 또 졌드만"

언제나 첫인사는 롯데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호는 인사를 한귀로 흘리고 다시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이내 소시지 볶음과 계란말이 그리고 맥주컵 4개를 들고 나온다. 강원은 다 먹은 접시를 들고 부엌 싱크대에 곱게 올리고는 냉장고를 열고 사이다를 들고 나온다. 맥주 세잔과 사이다 한잔이 허공에 부딛친다.

이야기는 롯데 야구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곧 그들의 일상이야기로 접어들었다. 요즘 등산과 캠핑에 빠져서 부인 몰래 비자금을 만들어 장비 모으는 재미에 빠져버린 계량이. 낮과 밤이 없이 업무스케줄이 있어 규칙적인 생활이 안된다는 예성이. 이렇게 4명은 20년동안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 꿈을 꾸기에는 늦었고 안정을 찾기에는 이른 30대 초반의 롯데팬이기도 하다.

맥주와 사이다는 점점 비워져가고 얼굴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호는 식어빠진 계란말이를 휘집으며 깨작거리고 강원은 연신 입을 적실만큼만 사이다를 마시고는 시계를 힐끔 쳐다본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예성은 이젠 지겨운듯 지지개를 펴며 연예인들의 가쉽거리를 방송하는 케이블 티비를 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고 하품을 한다.

"대한민국 30대 참 할거 없다."

강원이 입버릇처럼 낮게 읖조린다. 10년 전엔 30대를 20대로 말했을 뿐 10년 가까히 버릇처럼 내뱉는 그들 공통의 불만이었다.

"그래서 등산 한번 가자고 같이"

한달 전부터 등산얘기를 해왔던 계량이가 다시 등산이야기를 꺼낸다. 안그래도 술마시는 내도록 새로산 등산화와 등산용품을 얘기했던 터였다. 그러나, 다들 말이 없다. 즐길거리는 없지만 찾아 움직이질 못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의 모습이다.

"일이 있는지 없는지 봐야지"

스케줄이 불분명한 예성이부터 한발 뺀다. 술을 먹어도 붉어지지 않던 계량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더 미루면 판을 엎어버릴 기세다.

"토요일 일요일 둘다 안되? 둘다 몰라? 그런게 어딧어? 그리고 너희 둘은 된다는 얘기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눈치를 본다. 계량은 망설이는 둘을 몰아친다.

"된다는 거야? 안된다는 거야?"

둘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예성이를 쳐다본다. 예성이는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빼볼께"

그렇게 우리의 여름을 지배 할 주말 등산약속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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